오늘의 알리야

[오늘의 알리야] 각자에 고통 속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반응

에싹 2022. 11. 30. 12:28

 

 

파라샤 : 봐예쩨 "떠나"

오늘의 알리야 말씀 : 창세기 30장 14절 - 27절

 

>내용 : 밀을 거둘 때 르우벤이 합환채를 따서 어머니 레아에가 드렸다. 합환채를 보고 라헬은 레아에게 오늘 밤 야곱에 침실에 들어가라 라고 말하고 레아에게서 합환채를 받는다. 그리고 레아는 다섯번째 아들 잇사갈을 낳고 이어서 여섯번째 아들 스불론을 낳고 딸 디나를 낳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셔서 그 태를 여시고 요셉을 낳는다.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 야곱은 라반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고 라반은 야곱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한다.

 

 

 

 

 레아의 아들 르우벤은 어머니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합환채를 따왔습니다. 합환채는 여자에 임신을 돕는데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서 라헬은 그 합환채를 얻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레아와 거래를 해서 야곱에 잠자리로 들어가라고 하고 그 합환채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레아와 야곱은 부부사이로 누구에 허락이 있든 없든 함께 잠자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왜 레아에게 야곱과에 잠자리를 허락하고 양보한 식으로 말했던 것일까요?

 

 

 레아는 라헬만큼은 아니었지만 아름다웠고 지혜로운 여성이었습니다. 레아는 자신에 아버지 라반에 말대로 야곱과 혼인을 했지만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을 보면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과 함께 더 많은 저녁 시간을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레아는 여자로써 얼마나 큰 모멸감을 느꼈을지 상상히 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자신에 아버지 라반에 대한 원망감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통해서 자신에 재물이 더 많아지는 것을 보고 야곱이 하나님에 축복을 받는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원하던 자신에 딸 라헬을 신부로 준다면 야곱이 떠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야곱을 속이고 자신에 딸 레아를 주었던 것입니다. 명목상으로는 동생이 언니보다 더 혼인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라반에 주된 목적은 야곱을 통해 더 부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레아는 아버지에 말에 순종하고 야곱과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여전히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레아에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하셨고 레아에 태를 열어 많은 아이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레아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기쁨을 주신 것입니다. 

 

 

 반면 라헬은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자신에 언니인 레아는 아이를 많이 출산하고 있지만 자신은 출산하지 못해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르우벤이 레아에게 주었던 합환채를 야곱을 통해서 레아에게 산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상황속에 놓여져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괜찮아보이고 살만한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들까?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하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각자 상황은 다르더라도 그 상황 속에서 고통을 느낄 때도 있고 행복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할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을 1차원적으로 그냥 봤을 때 우리는 야곱에 사랑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레아와 아이를 낳지 못해 마음에 고통을 받는 라헬에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더 자세히 볼 때 그 상황 속에서 아름답게 반응하는 어머니들에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라반에 욕심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말씀에 순종하고 야곱과 혼인한 레아, 야곱에 사랑을 받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리고 기쁨으로 그 아이들을 양육하는 레아에 모습. 또 아이가 생기지 않은 라헬, 그 상황에서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온전히 아이를 갈망하고 아이를 갖고자 노력하는 모습. 

 

 

 모든 사람들은 각자에 자리에서 가지고 있는 고통이 당연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 속에서에 우리에 반응이 우리에 어머니들과 같은 모습으로 성숙하기를 원합니다. 물론 서로에 연약함으로 마음이 상할 때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 모습들은 점차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